[단독] 전셋집 빼고 기다리다 '날벼락'…신혼부부 울린 LH

입력 2024-03-27 07:52   수정 2024-03-27 11:33


2021년 사전청약을 받아 내달 본청약이 예정됐던 신혼희망타운(신희타) 아파트의 일정이 돌연 연기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사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본청약이 계획된 4월을 불과 2주 앞두고 통보한 터라 자금조달 계획이 송두리째 뒤틀린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문제는 본청약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거 형태를 바꾸거나 퇴직금을 받고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신혼부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신희타가 엄격한 자산과 소득 기준을 적용했던 만큼, 여유 자금이 부족한 당첨자들은 다소 큰 부담도 감수하면서 본청약을 준비해왔다. 이런 가운데 갑작스럽게 본청약이 지연되면서 신희타에서 살 미래를 그리던 신혼부부들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당첨자 정모씨는 내달 본청약에서 내야 할 계약금을 마련하고자 지난해 10월 군포 아파트 전셋집을 빼 오피스텔 월세로 옮겼다. 전세대출을 상환하면 그래도 돈이 부족해 아내의 10년짜리 청약통장까지 해지했다는 정씨는 "본청약을 미루겠다는 안내문은 읽자마자 화가 나 찢어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LH, 신혼부부에 본청약 2주 전 '최소 3년 연기' 통보
27일 한경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LH는 최근 군포대야미 A2 신희타 사전청약 당첨자들에게 본청약 지연 안내문을 보냈다.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지난 15일 전후로 받아본 안내문에는 내달로 예정됐던 본청약이 2027년 상반기 중으로 미뤄진다는 내용이 담겼다. LH는 부지 내 고압송전선로 이설을 이유로 본청약을 3년 연기했다. 해당 공사가 늦어질수록 추가로 지연된다는 입장이다. 자연스레 입주 일정도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군포대야미 신희타는 군포시 대야미동과 속달동, 둔대동 일원 14만4639㎡ 규모 '군포대야미 공공주택지구'에 들어서는 신혼부부 특화형 공공주택이다. 2021년 10월 군포시 2년 이상 거주자를 대상으로 952가구를 공급해 1.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당시 추정 분양가는 전용 55㎡ 3억5857만원, 전용 59㎡ 3억9443만원이고 2024년 4월 본청약, 2027년 1월 입주 계획이었다.


정씨는 "송전선로 문제는 계속 있었던 이슈인데 이제 와서 구실로 삼는 것은 그동안 일을 안 했다는 의미 아니냐"며 "추가 지연이라는 부분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의도로 읽혔다"고 말했다. 2021년 군포대야미 신희타 사전청약에 당첨된 정씨는 보증금 1억8000만원이던 군포시 아파트 전셋집을 나와 지난해 10월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90만원짜리 오피스텔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내달 본청약에 내야 할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전세대출까지 상환한 뒤 정씨 수중에는 약 5000만원이 남았다. 정씨는 "그 정도면 옵션 등을 감안해도 계약금이 모자라진 않겠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었다"며 "월세가 부담이었지만, 3년이라면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약 4억원으로 예상되는 분양가의 70%는 신희타 모기지로 대출받고, 오피스텔 보증금을 뺀 뒤 부족한 금액은 부모님께 도움받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LH가 본청약을 3년 미루면서 정씨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는 "2021년에 청약받아 2030년 이후에 입주하는 꼴인데, 안내문을 보면 2030년 입주도 보장되지 않는다"며 "나이만 들고 자녀 계획은 꼬였다"고 허탈해했다.


LH는 본청약 지연 사유로 부지 내 고압송전선로 이설을 들었다. 신희타가 예정된 부지에는 34만5000볼트 특고압 전력선이 지나는 송전탑이 여럿 자리 잡고 있다. LH는 이 송전선로를 지중화하는 공사에 3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다른 당첨자 이모씨는 "3년이나 걸리는 송전선로 공사를 이제 와서 재론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쉬쉬하다 본청약 직전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당첨자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당첨자 "청약받고 3년간 뭐했나…사실상 무기한 연기" 분통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송전선로를 부지 내 지중화할 계획이었는데, 한국전력이 관련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며 "협의가 되지 않다가 지난해 말 수도권 광역 정전이 우려된다며 한전이 송전선로를 다른 부지로 옮겨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리(LH)로서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군포대야미 신희타 본청약이 3년 넘게 연기될 가능성도 언급했다. LH 관계자는 "아파트 공사 여건이 갖춰져야 본청약을 하는데, 송전선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파트 공사를 시작할 수 없다"며 "임시 이설 부지를 새로 물색해야 한다. 여기에도 시간이 걸리고, 이설 공사는 한전이 해야 하기에 본청약이 얼마나 지연될지 알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LH의 설명에 한전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했다. 한전 경인건설본부는 "2019년 LH와 협의를 시작해 2021년 10월 지중화협약서를 체결하는 등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라며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이 그간 협의가 되지 않았다거나 갑자기 이설을 요구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전력공급을 유지하면서 공사하는 만큼 건설장비와 접촉사고를 방지하고자 택지 외곽에 임시 이설 부지를 요청했다"며 "부지 확보가 어렵다면 택지 내에서 공사를 진행해 공사기간을 맞출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공사 기간에 대해서는 "지난달 지중화 공사가 시작됐고, LH와 작성한 협약서에 약 54개월이 걸린다고 명시했다"고 강조했다.
LH "한전이 지중화 계획에 협력 안해" vs 한전 "사실무근"
실상이 이런데도 사전청약을 받은 LH는 구제방안조차 고려하지 않고 있다. 사전청약 당첨자는 LH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LH 관계자는 "사전에 지연 가능성을 알리지 못한 점은 죄송하다. 사전청약자와 소통을 강화하겠다"면서도 "사전청약은 단순한 예약 개념일 뿐, 계약 관계가 아니기에 LH가 보상할 근거가 없다. 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당첨자 김모씨는 "계약금을 마련하려 아내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았다"며 "통보문의 '사과드린다'는 한 줄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당첨자 박모씨는 "신희타를 기다리며 다른 청약을 외면하는 사이 신혼 인정 기간이 끝났다. 이제와서 다른 청약을 넣어봐야 당첨이 되겠느냐"며 "LH에 전화해 따졌더니 '청약통장이 사용 전이니 다른 청약을 넣으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LH가 2021년 7월부터 지난해까지 88개 단지에서 사전청약을 접수했다. 이 가운데 당초 본청약 일정이 도래한 단지는 27곳, 예정대로 본청약이 완료된 단지는 12곳에 그쳤다. 절반 넘는 단지에서 본청약 예정일을 맞추지 못하면서 청약자들 사이에서는 '사전청약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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